(백현이가 선생님이라면 이런 모습 아닐까효....)




W.미스틱




한국사_변선생님




***






한 학급의 대표가 되는 일은 고3 계획에는 없는 일이었다. 그냥 조용히 공부하고, 자습하고, 시험 치고 그렇게 1년을 보내다 졸업하려 했는데 반강제로 친구들이 후보 추천을 하는 바람에 답정너 수준으로 학급 투표가 진행되었다. 유난히 우리 학교만 반장을 많이 불러대는데 그게 번거로워서인지 섣불리 나서는 아이들이 없어 후보는 나 하나밖에 없었다. 반 배정 때 아는 친구들이 많아 기뻐했는데 이런 식으로 우정이 변질되다니, 속아버렸다. 후보가 한 명뿐인 이상 투표는 찬반으로 이루어졌는데 거의 확정이나 다름없었다. 자포자기한 채로 하겠다고 하자 아이들은 함성을 질렀다.






뭐 반장 생활 일주일째인 지금 아직까지는 괜찮은 것 같다. 오히려 쏟아지는 선생님들의 관심에 후보로 떠밀어준 친구들에게 고맙기까지 하다. 방금 전 쉬는 시간에도 문학 선생님이 유인물을 가져가라고 시킨 심부름을 하려고 교무실에 갔었다. 난 그저 '4반'이라 포스트잇에 적혀있는 36장짜리 종이 더미만 들고 가려 했는데 한국사 선생님이랑 눈이 마주쳐버렸다. 무시하고 가려 했지만 난 이미 찍혔기에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정직한 인사였다. 보통은 "쌤 안녕하세요" 거나 "안녕하세요"로 통하는데 안녕하세요 선생님이라니. 별거 아닌 것에 소름 돋아 뒤돌아 나오는데 선생님이 나를 부른다. 다른 선생님이 계셔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생글생글 웃음까지 머금은 채로. 사실 처음 보는 것 같은 선생님의 웃음이라 어색하지만 함께 웃으며 돌아봤다.






"네?"




"이리 와봐"




"왜 부르셨어요"




"이것도 좀 갖고 가라고"




"아..."




"우리 반 알지? 애들 좀 나눠줘"






아니 이런 미친 사람이 다 있나. 5반도 분명 반장이 있다. 굳이 나를 찾아 시키다니 괜히 서러운 마음이 몰려온다.




.


.


.


그날 나는 60장이 훨씬 넘는 종잇 뭉치를 들고 두 층을 올라갔다.






×××






"반장 이거 나눠줘"




"뭐야 이거 네가 들고 온 거야? 수고했어"




"후.. 너네 담임 나한테 왜 이러냐"




"쌤이 너 좋아하나보지ㅋㅋㅋㅋ"




"미친.. 그런 사랑이라면 거절한다. 차라리 생기부 한 줄을 더 적어줘라"




"어후 아무튼 수고했다 야"




"그래, 열공하고"




"너도"






다행스럽게 옆반 반장은 참 다정했다. 거의 끌고 오다 싶이 종이를 들고 와 한 쪽팔을 두드리며 우리 반 아이들에게 문학 프린트를 나눠줬다. 공부에 미친 하이에나들은 종이를 받자마자 이름을 쓰고는 지워지지 않게 테이프로 한 겹 더 코팅한다. 사물함에서 문학책을 꺼내고 자연스럽게 이성경 옆자리에 앉으니 온 줄도 모르고 핸드폰만 쳐다본다. 전화 문자만 하면 된다면서 휴대폰은 폼으로만 갖고 다니던 아이가 하루 종일 실실거리면서 붙잡고 있는 걸 보니 남자가 생겼나보다.






"남자?"







"어? 아니 그냥 운동같이 하는 애"




"남자네"




"뭐래, 아무튼 변백현 진짜 또라이 아니냐?"




"그러니까. 말 돌리지 말고"




"진짜라니까"




"이름은? 잘생겼어? 키커?"




"아 잘생겼어 키도 크고. 이름은 네가 알아서 뭐 하게!"




"우리 성경이 연애한다고 놀려야지"




"미친"






여자들 끼리의 대화라 설레발 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했지만 키도 크고 잘생기고 운동까지 하는 남자라니, 19년의 공백을 그런 완벽한 사람으로 채운다는게 부러울 따름이었다.- 자식 키우는 마음으로 눈물 훔치는 척을 하니 꺄르르 대며 날 밀어버린다. 의자의 거의 끝부분까지 밀려나 넘어질 뻔했지만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라 아무렇지 않게 자세를 고치고 앉는다.






×××






문학은 좋아하지만 선생님은 좋아하지 않는다. 작년부터 느껴온 거지만 선생님은 (수업만 안 하시면) 참 좋은 분이신데 수업은 왜 이리도 지루한지 모르겠다.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책상에 엎어지려다 시간표를 본다.




'한국사 : 변백현'




4교시가 한국사 시간이었다. 금요일 1교시 아니면 월요일 4교시라니 참 행복하다.








"아 한국사"







"오늘은 책 챙겼어?"




"저번에 엄청 혼나고 집 가서 바로 챙겼지"




"다행이다. 앞으로 잘 숨어 다녀, 괜히 걸렸다가 안 그래도 칙칙한 1년 더 우울하게 보내지 말고"




"그래야지. 너는 걔랑 연락 안 해? 남주혁."




"맞다, 얘 오늘 시합 때문에 우리 학교 온다는데 얼굴 보러 갈래?"




"걔가 시합인데 왜 우리 학교를 와"




"맞네, 왜 이래 얘?"




"좋아하네! 시합 가기 전에 네 얼굴 보려고 오는 거 아니야?"




"아 …. 미친 거 아니야? 나 지금 설레발쳐도 되는 거지"




"충분히"




"아니면 어떡해"




"아니면 아닌 거지"




" … …."



"난 책 가지러"








빠르면 다음 주부터 주말에 혼자 도서관에 가야 할 듯하다. … 그래 자발적 아웃사이더 좋지. 양 볼을 붙잡고 있는 성경이의 얼굴이 빨갛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사물함을 열어 한국사 책을 꺼내 온다.









"인사"




문을 열고 늘 그렇듯 걸어오며 말을 하는 선생님의 표정은 한결같이 ㅡㅡ 이런 모양이다.- 저것도 귀여운 편이다- 아무튼 더 늦었다가 또 무슨 말을 들을지 몰라 서둘러 인사를 하려는데 또 늘 그래온 것처럼 말을 자른다.






"반장은 오늘 야자 끝나고 좀 남자"




"네?"




"… …."




"…. 네




차렷 경례"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목소리들은 놀이공원에 온 것 마냥 명랑한데 나 혼자만 화장실 청소부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거기다 오늘은 야자가 끝나고 잘생긴 수학 선생님의 '포인트만 쏙쏙 짚어주는 단.기.완.성.과외' 가 있는 날인데 비싼 과외비를 버리는 걸 본다면 엄마가 화낼 것 같다. 살인이라도 저지를 것 같은 눈빛을 못 본척하며 고개를 숙인다.




.




악마변백현 답게 중간에 쉬거나 농담하는 일은 없었지만  변백현 선생님은 수업을 정말 잘 하신다-정신 차리고 들으면 잠 안 자고 수업 들은 보람이 있을 정도로-. 어쩌다 보니 선생님 찬양으로 넘어갔는데 아무튼 야자 끝나고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벌써부터 답답해져온다.






×××






"왔다 왔다 왔다"




"누구"




"남주혁!"




"아- 가자"







"나 얼굴 괜찮아?"




"응 제발 가자"



"후… 떨려"




"그냥 친구라며, 같이 운동하는 사이라며"




"네 말 듣고 나니까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어후… 가자"






학교에 오면 자거나 수업 듣거나 먹기만 하던 아이가 남자 하나로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한참 동안 거울을 보다 전화 소리가 들리자마자 손목을 낚아채고 정문으로 달려나간다. 거의 모든 학교가 그렇듯 우리 학교 역시 학교 안에 있어야 할 시간에 정문으로 나간 걸 경비아저씨께 걸리면 벌점이다-이름만 벌점이지 효력은 없다-.




"야, 나가면 걸,"




"안녕!"







"늦었다?"




"아 미안, 근데 웬일이냐? 오늘 학원 안 와?"
 


"가는 길에 잠깐 들렀지. 옆에는 …"




"아, 안녕? 나 그냥 얘 친구야"








선생님께 혼나도 될 것 같다.






×××






"야자 열심히 하고, 변백현 파이팅!"




"얼른 가라"







"수고해ㅡ"






이성경은 자습을 안 하는 대신 입시학원에 간다. 오늘은 성경이의 빈자리가 조금 쓸쓸하다. 오늘 같은 날-변백현한테 또 찍힌 날-은 얘기도 하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고민 상담보다는 진로가 더 중요하니 사물함으로 가 2학년 때 놓아버린 미적1 문제집과 노트를 꺼내온다. 수학은 쳐다만 봐도 머리가 울리는 것 같아 놓아버렸는데 작년 11월 모의고사 성적을 보니 충격적이어서 겨울방학부터 다시 시작했다. 죽을 맛이었지만 뭐 죽지 않았으니 할만하다는 거겠지.


 


 



 


근데 문제 진짜 안 풀린다.


 


 


 


 


어느새 노트에 공식 대신 혼잣말을 적고 있었나 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X됐다' , '집 갈래' 이런 쓸데없는 것들이 가득 차 있었다. 휴 정신 차려야지 고3이니까, 푸념처럼 늘어놓는 이야기인데 대한민국은 고3이라는 이유만으로 제한되는 게 너무 많다. 중3이나 고3이나 공부 안 하는 건 똑같은데 말이다. 나름 작게 쉰다고 한숨 쉬었는데 앞자리 아이의 신경을 건드렸나 보다. 하긴 한창 예민할 때다. 나도 오늘 아침에 엄마랑 별거 아닌 걸로 다투고 왔으니까.






*






미적1 반단원정도를 공부하니 어느새 자습 1부가 끝나있었다. 2부를 열심히 하기 위해 교실에 있던 친구 아무나 데리고 매점으로 내려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았다. 다들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나 보다. 슬금슬금 사이를 파고들어 이모한테 비틀즈와 이온음료를 하나씩 달라고 말한 뒤 교복 마이에서 주섬주섬 돈을 꺼냈다. 거의 체육복이 교복일 만큼 입고 다니는데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후드티만 입으니까 추워서 마이를 걸쳐 입었을 뿐, 남보다 앞서 나가는 고3의 패션리더가 바로 나였다.




같이 따라온 친구는 숏다리를 씹고 나는 비틀즈를 입안에 톡톡 까넣고 있는데 계단으로 내려오는 변백현 선생님이 내려오고 있었다.






"아-!"




"야 괜찮아?"




"어? 어…"







"조금 이따가 보자. 도망가면…"




"네 선생님! 교무실로 가면 되는 건가요?"




"그래. 열심히 하고"






쿨내나는척..눈 동그랗게 뜨고 귀여운 척... 당황하지 않은 척.. 세상 가장 발랄한 소녀인 척... 을 하며 선생님께 손까지 들어 인사를 했다. 같이 있던 친구가 어깨를 때리면서 웃어젖힌다. 선생님을 다시 만나기까지 2시간이 조금 덜 남았지만 아직 왜 남으라고 하는지 이유는 모른다.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을까 하며 친구와 얘기하면서 반으로 올라가자 타이밍 좋게 종이 울린다. 매점 쟁취에 실패한 여고생들이 올라가는 소리가 와다다 하고 몰려온다. 열심히 하겠다고 비틀즈도 사 왔는데 정작 2부가 되니 무슨 공부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건 공부를 해뒀다는 뜻이 아니라 아무것도 해둔 게 없어 무슨 공부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뜻이다. 그나마 가장 흥미 있는 한국사와 문학책을 폈는데 미치겠다. 오늘 공부한 내용 말고 하나도 모르겠다. 하는 수 없이 한국사 책을 펼쳐 그리다 만 연표를 만들기 시작한다.




×××




피 같은 눈물을 흘리며 연표를 완성한 뒤 종 치기 30분 전부터 잤던 것 같다. 보통 그 시간쯤이면 슬금슬금 집에 갈 채비를 하는데 오늘은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눈뜨고 보니 딱 좋게 종 치기 2분 전이어서 책상 안에 넣어놓은 거울을 꺼내 얼굴을 보는데 무슨 괴물이 한 마리 있다. 대학생 되면 매일 꾸미고 학교에 갈 거다. 지금은 고3이니까.-이것 역시 대한민국에서 통하는 주문이었다.- 대충 앞머리 정리와 눈곱만 떼고 질질 내려오는 머리는 그냥 하나로 묶어버렸다. 귀찮아서 확 자르고 싶은데 얼마 남지 않은 캠퍼스 생활에 긴 생머리를 찰랑대며 걷는 게 소원이기 때문에 남겨뒀다. 아무튼 가방을 다 메고 있는 친구들을 불러 상모돌리기! 하며 머리를 돌리자 꺄르르 하고 넘어간다. 가랑잎만 굴러가는 소리에도 웃는 소녀들이었다.






"반장 수고"




"그래 잘 가라"
 




상모돌리기는 괜히 한 것 같다. 짐을 챙겨 가방을 메고 교무실로 가면서 머리를 다시 묶는데 예쁘게 하려니까 더 안되는 것 같다. 하는 수 없이 자기 최면으로 '나는 지금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기 위해 머리를 묶는 거다. 예쁘게 묶이지 않아도 상관없다'라고 생각하니까 참… 예쁘게도 묶였다.






"선생님 …"
 





"왔어? 옆에 앉아, 교무실에 커피랑 녹차밖에 없는데"




"그럼 저는 커피 마실게요"




"믹스 괜찮지?"




"감사합니다"






요즘은 반장이 돼서 워낙 많은 선생님들과 얘기하다 보니 덜하지만 아직까지도 선생님이나 나이 많은 사람과 있으면 어색하다. 여고 특성상 발랄한 아이들이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아무튼 연장자 앞에서는 쭈굴이가 되어버려서 어색한 상황이 펼쳐지곤 했다. 아…벌써부터 한숨만 나오려 한다.






"근데 저 왜 남기셨어요?"




"원래 반장들 남겨서 일시키려 했는데 다들 안된다고 해서, 넌 오늘 일 조금만 도와주고 놀다가 가자"




"ㅎ.. 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잘생긴 수학선생님 보러 가야 한다고 할 걸 그랬다. 도망간 반장들은 지금쯤 버스 타고 집에 가고 있겠지, 정말 한숨밖에 안 나온다.


 


 



 




"뭐 시키실 거예요?"




"그냥 옆에 앉아서 이거 4장씩 스테이플러로 찍어"




"이거 다요?"




"말 되게 많네, 그냥 30분까지만 해"




"근데 복사 맡기면 다 찍혀서 나오잖아요"




"고장이래"




"아… …."






스테이플러나 찍으라고 여고생을 10명이나 남기려 하셨나 보다. 10명이 나란히 앉아 스테이플러를 찍는 것도 웃긴 모양새였을 거다. 티 안 나게 한숨을 쉬며 차례대로 종이를 합쳐서 스테이플러로 찍어댄다. 좋았어 오늘의 무기는 너로 정했다! 속으로 멋진 대사를 날리며 노트북에 시선을 고정한 선생님 눈치를 보고 팔을 앞으로 뻗어 멋있는 포즈를 취했다.









"뭐 하냐"




"에? 아… 헐"




"빨리해. 시간만 벌려고 하지 말고"




"ㅎㅎ..넵"






일이나 하시지 왜 고개를 들었는지 모르겠다. 민망한 손을 거두며 다시 콩콩 스테이플러 심을 박는다.






*






"으- 선생님 시간 다 됐어요"




"수고했어"




"선생님 되게 귀여우시네요."




"그런 말 좀 들어"




"와 뻔뻔함까지"




"좀 맞춰주니까 까불지. 내가 이래 봬도 우리 학교에서 악마로 통하는 사람이야"




"...알고 계셨어요?"




"모를 리가 있나







내가 왜 악마지? 이렇게 착하게 생겼는데"




"자신감도 쩔고"




"죽는다"




"좀 웃고 다니세요! 아까 보니까 웃는 거 예쁘던데"







"내가 언제 웃었어"




"안 웃으셨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저 그냥 쌤이라고 부르면 안 돼요?"




"안돼"




"들어보세요, 선생님은 입을 세 번이나 움직여야 하는데 너무 비효율적이고 쓸데없이 에너지만 낭비하잖아요"




"입만 살았지? 안돼"




"쌤 되게 어려 보이시는데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후… …. 얼마처럼 보이는데?"




"그런 거 물어보시면 곤란한데 …. 많으면 스물여덟..?"




"나 그것보다 어린데"




"알려주세요!"
 


"스물다섯"




"헐"




"뭐"




"대박"




"뭐가"




"제대했다고 치면, 거의 임용 한 번에 붙으신 거 아니에요?"




"왜 제대했다고 치는데"




"대부분 그러니까...?"




"아직 군대 안 갔는데"




"헐"




"넌 그 소리밖에 못해?"




"아니요! 의외네요 선생님"






약속한 30분이 되어 선생님을 슬쩍 부르자 노트북 위로 빼꼼 눈만 올라온다. 푸스스 웃으며 귀엽다고 말하자 뻔뻔하게 벽에 걸린 거울을 보며 심취한 표정을 짓는다. 모두가 알던 선생님의 성격과 다른 부분이 많아 놀란와중에도 눈치없는 농담도 주고받을 정도로 분위기가 많이 풀렸다. 분위기를 편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언제 가실 거예요?"




"10분만"



"네…"
 




선생님이 업무를 보고 계실 동안 휴대폰을 켜 버스 정보를 알아보니 다행히 15분 뒤에 집으로 가는 버스가 한 대 남아있어서 번호를 기억한 뒤 밀려있던 카톡을 읽었다.




.


.


​수학쌤



​오늘 수업 안 오니?


앞으로는 연락 줘^^


.


.








아 생각해보니까 엄마한테만 대충 말하고 수학선생님께는 말씀을 못 드렸던 것 같다. 죄송하다고 답장을 드리고, 중간중간 조용히 하라고 이마도 몇 대 맞아가면서 친구들한테 온 카톡을 읽으며 킥킥대니 10분이 금방 흘러있었다.




"끝"
 


칼 같은 사람. 정말 10분을 맞춰서 업무를 끝내다니 대단한 사람이다.








"선생님도 집 가세요?"




"그러면 어딜 갈까"




"그렇죠, 선생님도 집으로…. 네! 안녕히 가세요"




"뭐 해, 데려다줄게"




"아니요! 5분만 기다리면 버스 와요"




"시간이 이렇게 늦었는데 버스를 탄다고? 위험하게?"




"맨날 타고 다녔던 건데 …"




"안돼, 오늘만 타고 가"




"… …. 네"






앗싸 버스비 굳었다.






*






"차가 좋네요 선생님"




"고맙다"




"… …. 이건 방향제에요? 차에서 좋은 냄새나요"




"그래"




"… …. 어… "




"머리 굴리지 말고 그냥 가지?"




"넵, 선생님 창문이 되게 부드럽게 내려가네요. 문도 막 위로 열리고 그런 거 아니에요?"




"… …. 후"




"넵!ㅎ"






처음 타 본 선생님의 차는 승차감이 좋았다. 소음도 안 나고 깨끗했고 차 안에 넣어둔 방향제 냄새도 좋았다. 학교와 집까지 거리가 멀어 가는길이 오래걸렸다. 나는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같은 시간 사이에 선생님은 지치신 것 같다. 선생님껜 죄송한 말이지만 이런 차라면 매일 타고 등교하고싶다.






"감사합니다-. 내일 봬요"







"가"




"안녕히 가세요!"






회색 승용차가 번쩍거리면서 아파트에서 멀어져 가는 걸 보고 나서야 공동현관으로 들어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이러다가 선생님이랑 전교에서 유일하게 친한 사람 되어버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하하. 괜히 선생님의 새로운 모습을 본 것 같아 기분이 들뜬다. 평소 같았으면 대박! 대박! 을 외치며 몇 명없는 3학년 단체방에서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뜨렸겠지만 오늘있었던 시간들은 왠지 나만의 비밀로 하고 싶었다. 아, 내 영원한 동반자 이성경 빼고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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